우리나라 식량안보의 핵심은 쌀과 콩의 자급에 있다

두류실 2012-11-04 (일) 16:23 11년전 2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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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식량안보의 핵심은 쌀과 콩의 자급에 있다.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고려대학교 명예교수
 
세계 식량사정이 불안해지면서 각 나라들이 식량안보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08년의 세계 곡물가격 파동 이후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지 않고 계속 상승하고 있다. 곡물 수출국들이 비축식량을 늘이고 기상이변으로 수확량이 줄어 식량수출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식량의 반 이상, 곡물 수요의 70% 이상을 외국에 의존하는 대표적인 식량안보 취약 국가이다. OECD를 비롯한 국제기구에서도 한국의 취약한 식량사정을 경고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식량안보 의식은 걱정스러울 정도로 안이하고 정부의 대응 역시 부재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좁은 땅에 세계 3위의 인구밀도를 가진 나라이고 국토의 70%가 산림이므로 이러한 조건에서 선진국 수준의 식생활을 향유하려면 식량의 100% 자급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어느 수준으로 지켜야 할 것인지에 대한 확고한 정책이 서 있어야 한다. 우리는 쌀의 자급에 목숨을 걸다시피 했다. UR 협상에서 다른 것은 다주고 쌀만은 지켜냈다. 대단히 중요하고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반쪽의 성공이라고 본다.
 
우리의 식사패턴을 보면 우리는 전통적으로 쌀과 콩으로 구성된 식단을 먹어왔다. 쌀밥에 된장찌개, 두부, 콩나물 반찬이 있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따라서 쌀과 콩이 자급되면 우리 국민의 기본 먹거리가 해결되는 것이다. 그러나 쌀의 시장개방이 눈앞에 다가와 있고 콩은 한 번도 자급하겠다고 하는 의지를 보인 적이 없다.
 
쌀의 자급이 위협받고 있다.
 
우루과이 협상에서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은 교활하고 노련했다. 쌀을 끝까지 지키려는 한국에 대해 최소시장접근방식(Minmum Market Access)이라는 덪을 걸어놓은 것이다. 당장 시장개방을 하지 않는 대신 WTO 출범 첫해에 국내수요의 1%만을 의무수입하고 이어서 매년 0.25%-0.5% 씩 추가하여 2004년까지 의무수입량을 4%로 확대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당시 협상을 담당했던 위정자들은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고 받아들였다. 10년 후에는 정권이 두어번 바뀌니 먼 훗날의 이야기 같았다. 그러나 10년은 어느새 지나고 다시 도하개발아젠다에 의한 뉴라운드에서 2014년까지 국내수요의 8%에 해당하는 쌀을 수입해야 한다. 국내에서 쌀이 남아도는데도 연 40만톤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하는 것이다. 우리가 백기를 들고 쌀 시장을 개방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다.
 
필리핀은 WTO출범과 동시에 쌀시장을 개방하였다. 필리핀은 쌀 수출국으로 먹고 남는 쌀을 외국에 팔던 나라였다. 그러나 WTO 이후 국내가격보다 현저하게 값싼 수입쌀이 들어오면서 연 2-300만톤의 쌀을 수입하게 되었다. 국제 쌀값이 저렴하였던 2007년 까지는 서민들의 식량사정이 크게 나아졌다. 그러나 2008년 장립종 인디카쌀 국제가격이 톤당 300달러선에서 1,000달러로 급등하자 필리핀의 식량사정이 곤두박칠친 것이다. 쌀값이 폭등하자 1만5천명의 노동자들이 대통령궁 앞에 모여 정권퇴진을 외쳤다. 놀란 필리핀 정부는 태국과 베트남에서 킬로그램당 1달러를 주고 쌀을 수입하여 1/3가격에 정부가 운영하는 쌀 판매소에서 일인당 일정량만 빈민층에 판매하였다. 매일 수천명의 노동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쌀을 사려고 아우성이었다. 필리핀 정부는 쌀보조금이 전년도의 15배가 증가한 10억달러를 지출하여 국가 파산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쌀의 자급을 게을리하고 쌀 생산 인프라를 무너트린 국가의 참혹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일본은 WTO이후 수년간 쌀 시장을 지켰으나 2000년대에 들어와 쌀의 관세화 수입으로 전환했다. 국내 쌀값과 맞추기 위해 1000%에 가까운 관세를 붙였다. 그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일본은 쌀시장을 개방하기 전에 세계 어느 쌀보다 일본쌀이 일본인들에게 가장 선호되는 맛있는 쌀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철저히 교육하였던 것이다. 필자가 1980년대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미 일본 총합식품연구소를 중심으로 일본쌀의 식미(밥맛)에 관한 연구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들은 UR협상 기간동안 쌀 시장 개방에 대비하여 철저히 준비하여 쌀시장이 개방되었어도 국민들이 일본쌀이 가장 좋은 쌀이라 여기고 수입쌀을 찾지 않게 했던 것이다.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농촌진흥청에 있던 쌀 식미연구팀이 수년전 해체되어 없어졌다고 한다. 쌀의 판매 유통에 밥맛이나 품질 등급이 전혀 고려되지 않고, 이천쌀, 철원쌀 등 지역명칭으로 판매되고 있다. 2011년에야 정부는 쌀의 품질등급에 의한 유통을 하겠다고 발표하였으나 단백질 함량 하나를 내세웠을 뿐 국민이 인식할 수 있는 품질등급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한국쌀의 국제경쟁력을 지금상태로 두고 쌀 시장을 개방한다면 필리핀 꼴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우리 쌀의 식미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만들고 국민이 이를 인식하고 믿게 하는 일이 시급하나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원래 우리쌀 ‘조선미’는 그 밥맛이 좋아 왜적이 호시탐탐 한반도를 침범하고 노략질 했던 이유였다.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 일이지만 우리는 이일을 등한히 하고 있다.
 
식용 콩은 반드시 자급해야
 
앞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콩은 우리의 식단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주식이며 쌀과 콩만 있으면 한국인은 식량위기에도 배고프지 않을 수 있다. 1970년도까지만 해도 식용콩의 대부분(86%)을 자급하였다. 물론 이 시기는 절대 빈곤의 시대였으므로 일인당 콩 소비량은 연간 5.3kg 수준으로 충분한 양은 아니었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동물성 식품의 소비가 늘고 이에 따라 축산업이 장려되면서 사료용 콩 수요가 급속히 늘어 1980년도 콩 자급률은 35%, ‘90년에는 20%로 급감하였다. UR협상이 끝나 WTO 무역자유화가 되면서 콩의 자급률은 급격히 떨어져 10%를 밑돌게 된다(표 1).
 
우리는 현재 120만톤의 콩을 수입하는데 이중 약 100만톤을 착유하여 그로부터 얻은 대두박을 사료에 사용하고 있다. 식용으로 사용되는 콩은 연간 약 40만톤으로 이중 15만톤을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어 식용 콩은 약 35%를 자급하고 있다. 2006년을 전후하여 논콩 수매제도를 실시할 때 수확량이 16만톤으로 증가하였으나 밭콩과의 형평성이 문제되어 이 제도 자체를 없애버렸다. 콩 증산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식용 콩을 자급해야겠다는 정책의지가 있었더라면 논콩과 밭콩을 모두 수매하는 제도로 갔어야 했다.
 
표1. 콩의 수급동향 변화 (단위:천톤)
1970
1980
1990
1995
2000
2007
2009
총공급량
429
777
1,450
1,820
1,781
1,431
1,415
수입량
30
417
1,092
1,435
1,586
1,209
1,200
국내생산량
232
257
252
154
116
156
131
식용(식량)
245
304
355
402
399
421
380
1인당소비량
(kg/year)
7.7
8.0
8.3
9.0
8.5
8.7
7.8
자급률(식용)
94.7
84.5
71.0
38.3
29.1
37.1
34.5
자급률(콩)
86.1
35.1
20.1
9.9
6.8
11.2
9.8
표1. 콩의 수급동향 변화 (단위:천톤)
자료 : 2009 식품수급표,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식용콩 40만톤을 생산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격지지 정책만 제대로 운용한다면 벼농사 대신 콩을 재배하거나 유휴지로 버려둔 척박한 땅에도 콩은 잘 자란다. 콩은 뿌리혹 박테리아로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이 있으므로 화학 합성비료의 소비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온실가스 저감화를 위하여 콩의 재배를 권장해야한다. 콩의 가격 지지를 위한 수매제도와 아울러 콩 재배농가에 탄소배출권을 부여한다면 연간 생산량 40만톤은 쉽게 달성할 수 있다.
 
쌀과 식용콩의 자급을 우리 농정의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채택해야 한다. 일본은 현재의 식용콩 생산 30만톤은 2020년까지 60만톤 생산할 것을 목표로 총력을 기우리고 있다. 우리 정부가 2011년 7월에 발표한 개정 식량자급률 목표치를 보면 콩은 현재의 31.7%에서 기존 2015년도 목표치 42%를 36.3%를 낮추고, 2020년에는 40%의 자급률 목표를 세우고 있다. 콩 증산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목표치이다. 세계 각 나라들이 앞으로 닥칠 식량위기를 대비하여 곡물 비축량을 늘이고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국가적인 노력을 기우리고 있는데 우리 정부의 대처가 너무 안이하다. 식량은 생명유지의 필수품이고부족하면 전쟁보다 더 무서운 사회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식량이 부족할 때 외국에서 사올 수 없으면 당장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항상 충분한 량을 비축하고 자급할 수 있는 생산능력을 갖추는 것이 필수이다. 쌀과 식용콩의 자급을 달성하여 국민을 안심시키는 책임있는 정부의 모습을 보이기를 기대해 본다.
 
* [환경기술]2012년 6월 [특별기고]글입니다.